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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송 프로필 불타는 트롯맨 작곡가 노래모음

 

정의송 프로필 불타는 트롯맨 작곡가 노래모음1

만사OK입니다. 반갑습니다. 오늘은 정의송 프로필 그리고 불타는 트롯맨 이야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또한 작곡가와 가수로서 그가 만들고 부른 노래들에 대해서도 같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서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최근 불타는 트롯맨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데요. 그동안 MBN에서 제작된 프로그램과는 많이 다르다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TV조선에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을 흥행시킨 서혜진 PD가 방송사를 옮긴 후 제작한 프로그램이라고 하더군요.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의송 님 노래 중 제가 제일 좋아하는 ‘님이여’를 먼저 듣고 시작하겠습니다.

 

 

1. 불타는 트롯맨

위에서 서혜진 PD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요. 여러분도 그렇듯 제가 궁금했던 건 서혜진 PD에 관한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정의송 님이 불타는 트롯맨에 참가한 이유와 지금까지 왜 방송에 나오지 않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정의송 프로필 불타는 트롯맨 작곡가 노래모음2

열심히 찾아봤지만 아쉽게도 이에 대한 내용은 아직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블로그를 근 10년간 운영했기 때문에 이런 연예계 뉴스는 상당히 빨리 접할 수 있는데요. 그래서 참가소식을 알게 된 후 나름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그 어디에도 이런 내용을 알 수 있는 곳은 없었습니다.

 

2. 정의송 프로필

그렇다면 반대로 정의송 님은 누구인지 알아보고 역으로 참가한 이유에 대해 추측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해보겠습니다. 의송 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일단 나이와 고향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의송님은 1965년 8월 7일생이며 2023년 한국 나이는 59세입니다. 강원도 삼척이 고향인 그는 넉넉지 않은 집안에서 8남 2녀 중 7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자라면서 평소 어머니가 흥얼거리는 트로트를 자주 들었고 그로 인해 의송님 역시 트로트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회고하길 어렸을 때 어머니로부터 받은 트로트 감성으로 인해 트로트작곡가와 가수가 된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정의송 프로필 불타는 트롯맨 작곡가 노래모음3

이외에도 자라면서 음악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이 계속 이어집니다. 국민학교 시절 큰 형이 아코디언을 선물해 줬다고 하는데요. 이때부터 아코디언에 푹 빠지게 되었고 이로 인해 작곡가가 된 지금도 좋아하는 악기 1순위로 아코디언을 꼽는다고 합니다.

 

초등학교에 이어 중학교에도 음악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중학교 시절 의송 님의 집에는 철도공무원이 하숙을 했다고 합니다. 이 철도공무원은 퇴근 후 항상 기타를 치며 휴식을 취했고 호기심 많던 어린 의송은 그에게 기타를 배웠다고 합니다.

 

정의송 프로필 불타는 트롯맨 작곡가 노래모음4

아코디언에 이어 이번에는 기타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 어린 의송의 음악적 재능을 큰 형은 진작부터 알아차렸고 늘 뒤에서 든든하게 지원해 줬다고 합니다.

 

비록 독학이긴 하지만 기타를 구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곡 공부를 했고 음악을 만들고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즐거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문학가가 꿈이었기 때문에 이때까지는 음악을 업으로 삼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해 가왕 조용필 님의 콘서트에 다녀온 후에는 오로지 가수가 되는 것만이 그의 꿈이었다고 합니다. 오죽했으면 학교에 갈 때도 가방은 놔두고 기타만 매고 등교를 해서 매일 선생님들에게 혼났다고 합니다.

 

학업은 뒷전이고 늘 가수만 꿈꾸는 의송은 선생님뿐만 아니라 막노동일을 하던 아버지에게도 자주 혼이 났는데요. 자신을 보면 항상 혼만 내는 아버지가 당시에는 너무 싫었다고 합니다.

 

이후 고등학생 의송은 우연히 삼척시민 노래자랑에 참가했다가 최우수상을 받게 되는데요. 최우수상을 계기로 아버지는 의송님의 노래실력을 인정하게 되었고 이때부터는 노래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에 올라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야간업소를 찾아다녔지만 노래를 부를 곳은 없었다고 합니다. 생계를 위해 어렵게 봉제공장에 취직한 후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음악다방을 돌며 무료로 노래를 불렀지만 꿈을 이루기에는 요원했습니다.

 

입영통지서가 나와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삼척으로 내려갔다가 군대 전역 후 다시 서울로 올라와 다시 한번 열심히 노력했지만 끝내 가난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3. 작곡가 정의송

1992년 그는 그토록 열망해하던 가수의 꿈을 포기하고 어릴 때부터 공부했던 작곡가의 길로 나서게 됩니다. 2년 후인 1994년 가수 김혜연에게 준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이 히트하게 되어 드디어 프로 작곡가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이후 송대관의 사랑해서 미안해, 소명의 빠이빠이야 등이 히트하게 되면서 의송 님은 그냥 작곡가가 아닌 히트 작곡가가 될 수 있었고 지긋지긋한 가난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히트 작곡가가 되다 보니 이제는 거꾸로 어릴 때부터 자신이 열망하던 길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요. 1999년 본인의 앨범을 발표하면서 드디어 가수로 데뷔를 한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스토리를 알게 된 후 긴 세월 본인의 꿈을 위해 노력한 의송 님에 대해 존경심이 생기더군요. 역시 될 때까지 노력하는 자는 결국 성공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작곡가이자 가수인 정의송 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의송 님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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